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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시2019. 6. 19. 15:40박두진-꽃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볕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아

일상/시2019. 6. 19. 15:38김춘수-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 여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일상/시2019. 6. 19. 15:36김종삼-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동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일상/시2019. 6. 19. 15:34이승훈 - 어느 조그만 사랑

오늘 광화문에서 만난 너는 꽃잎 같고 너무 고요해 귀가 찢어질 것만 같고 아니 번쩍이는 물고기 같고 물이 철철 흐르는 물병 같고 혹은 깊은 밤 문득 변하는 날씨 같고 바람은 불지 않는데 바람만 하루종일 불고 너를 만난 시간은 봄날 같다 아아 기적 같다 얼음이 풀리고 다시 어는 봄날 같다 형편없이 시든 육체로 너를 만난 시간은 꽃이 피는 들판 같고 그래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너의 가슴 너의 얼굴 오늘 광화문에서 만난 이 조그만 사랑!

일상/시2019. 6. 19. 15:28나태주 - 한밤중에

한밤중에 까닭없이 잠이 깨었다 우연히 방안의 화분에 눈길이 갔다 바짝 말라 있는 화분 어, 너였구나 네가 목이 말라 나를 깨웠구나.

일상/시2019. 6. 19. 15:20정희성 - 숲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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